PARA/03_Resources/R004_라이프스타일/고모의 죽음을 겪다.md

고모의 죽음을 겪다

  • 고모가 돌아가셨다.

  • 고모와 나는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 자주 연락을 주고받지도 않았고, 추억이라고 부를 만한 장면도 많지 않았다.
    • 그래도 친척의 죽음은 가족 전체의 일처럼 다가온다.
      • 슬퍼서라기보다는 가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마음도 있었고, 부모님 곁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공기부터 달랐다.

    • 국화 냄새와 향 냄새가 섞여 있었고,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인사를 나눴다.
    • 익숙한 얼굴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었다.
      • 반갑다고 하기에는 자리가 무거웠고, 어색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 아빠는 친척들에게 나를 자랑하셨다.

    • 대기업에 다닌다고, 연봉도 꽤 된다고 말씀하신 것 같다.
    •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편했다.
      • 사람들이 떠올리는 그런 대기업이 아니고, 연봉도 아빠가 말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 친척들의 비슷한 말이 몇 번 반복되자 어디를 봐야 할지 몰라 물만 마셨다.
      • 그 자리의 친척들 중에는 오히려 나보다 훨씬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말이다.
    • 그래도 아빠를 탓하기는 어려웠다.
      • 아빠는 아마 내 자랑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 나는 내가 그렇게 자랑스러운 아들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 그래서 더 말문이 막혔다. 부담스럽기도 했고 미안하기도 했다.
  • 친척들은 자연스럽게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 그런 말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 그 자리에서는 웃으며 넘기지만 혼자 있을 때 다시 돌아온다.
      • 나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일까.
      • 누군가를 책임지고, 누군가에게 기대도 되는 사람일까.
      • 대답하기 어려웠다.
  • 사실 나는 고모를 조금 미워했다.

    • 고모는 무속 일을 했다. 만날 때마다 공무원을 하라고 했다.
      • 그냥 듣기 싫은 정도가 아니었다.
        • 고모가 내 인생을 조종하려 한다고 느꼈다.
      • 그 말을 들을수록 절대로 공무원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 내가 선택한 일로 실패하더라도 내 선택이어야 한다.
      • 지금 돌아보면 유치한 반항이었을지도 모른다.
        •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꽤 중요한 문제였다.
      • 생각해보니 내가 개발자로 자리잡고나서 고모에게 '이겼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 그런데 죽음 앞에서는 그 미움이 이상하게 힘을 잃었다.

    • 고모는 이제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나는 더 이상 대꾸할 필요도 없었다.
      • 그 사실이 묘하게 허무했다.
    • 미움이 사라진 자리에 곧바로 슬픔이 온 것은 아니었다.
      • 대신 설명하기 어려운 안타까움이 남았다.
      •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 아빠와 친척들은 몇 번이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 눈물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신경 쓰였다. 내가 너무 차가운 사람인가 싶었다.
    • 그러면서도 머릿속에는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 친척 부고에 이틀 휴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은근히 의식하고 있었다.
      • 장례식장 한가운데 서서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싫었다.
        • 나는 슬픔보다 계산이 먼저 떠오르는 사람인가. 그런 생각까지 이어졌다.
  • 고모의 장례식에는 많은 사람이 왔다.

    • 사촌동생이 군인이라 화환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오래전 일을 꺼내며 고모 이야기를 했다.
      • 나는 그 말들을 들으며 내가 모르는 고모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 내가 아는 고모는 조금 부담스럽고 불편한 사람이었다.
        • 그런데 누군가에게 고모는 고마운 사람이었고, 의지하던 사람이었고, 오래 기억될 사람이었다.
  • 그러다 생각이 엉뚱한 곳으로 흘렀다.

    • 우리 부모님 장례식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올까.
    • 사촌동생의 친구는 발인 전까지 자리를 지켰다.
      • 나한테 그런 친구가 있나?
    • 부모님 장례식에 올 사람들을 머릿속으로 세어봤다.
      • 친구와 선배를 합쳐 스무 명에서 서른 명 정도.
      • 회사 동료까지 더해도 많지 않았다.
        • 숫자를 세는 일이 우습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세게 됐다.
        • 나는 얕은 인맥이 많지 않은 사람이다.
          • 깊은 인맥도 많지는 않지만...
        • 우습지만 결혼식도 같은 이유로 떠올랐다. 아직 헛된 걱정이라도 사라지지는 않았다.
  • 나는 발인까지 모든 과정에 함께했다.

    • 몸은 무거웠지만 중간에 빠지고 싶지는 않았다.
      • 고모와 각별해서라기보다는, 부모님을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다.
  • 어머니가 고모의 죽음을 이렇게 깊이 슬퍼할 줄은 몰랐다.

    • 두 사람 사이에 내가 모르는 시간이 있었던 것 같다.
      • 내가 보지 못한 대화와 기억과 정이 있었을 것이다.
    • 어머니가 울 때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 그냥 곁에 있었다. 물을 챙기고 자리를 지키고 필요한 순간에 따라 움직였다.
      •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 발인 때가 되자 분위기는 더 조용해졌다.

    •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도 끝내 울지 않았다.
      • 대신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눌렸다.
    • 고모와 가깝지 않았어도, 이별의 형식은 사람을 붙잡아 세운다.
  • 이틀의 휴가를 받았지만 휴가라는 느낌은 없었다.

    •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몸은 쉬지 못했다.
    • 다음 날 출근을 생각하니 마음보다 몸이 먼저 무거워졌다.
  • 고모의 죽음은 내게 분명한 슬픔으로 남지는 않았다.

    • 그렇다고 아무 일도 아니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 오히려 여러 장면이 남았다.
      • 친척들 앞에서 나를 자랑하던 아빠의 목소리.
      • 오래 울던 어머니의 얼굴.
      • 끝까지 자리를 지키던 사촌동생 친구의 뒷모습.
      • 장례식장 한쪽에서 내가 몰래 세어본 사람의 숫자들.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 그 질문은 장례식장에 놓고 온 줄 알았는데, 집에 돌아와서도 따라왔다.
    • 회사에 가고 밥을 먹고 평소처럼 하루를 보내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 고모의 죽음은 내게 슬픔만을 남기지 않았다.
    • 나는 가족에게 어떤 사람인지. 부모님에게 어떤 아들인지.
    • 누군가의 마지막 자리에 끝까지 남을 수 있는 사람인지.
      • 그리고 내 마지막 자리에는 누가 남아 있을지.

아직 답은 없다. 다만 이번 장례식 이후로 그 질문들을 아주 쉽게 넘기지는 못하게 됐다.

댓글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