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을 읽다.
개요
밀리의 서재 서고를 살펴보니 이번에는 소설책을 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설책 뭐 읽을까 고민하다가
누군가의 인생책이라고 해서
그리고 밀리에 있어서
골랐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내용
등장인물
데이지
- 이야기의 시작점이자 화자. 하지만 빠르게 시점이 올리브로 전환된다.
- 성년식을 앞두고 마을을 떠난다.
- 소피에게 편지 혹은 기록 형태로 자신의 여정을 남긴다.
소피
- 데이지가 남긴 편지의 수신자.
- 마을에 남아 있는 인물로, 데이지의 진심과 진실을 전해받는다.
문지기
- 현실과 초현실, 마을과 외부 세계의 경계에 서 있는 존재.
- 데이지에게 서가를 통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며, 올리브의 이야기를 볼 수 있도록 한다.
올리브
- 지구에 도착한 순례자.
- ‘릴리’를 찾아 헤매는 인물로, 그녀와 같은 흉터를 가지고 있다.
릴리
- 마을의 ‘시초’ 혹은 조상격 인물.
- 유전공학자였으며, 얼굴에 얼룩 같은 흉터를 가졌던 탓에 사회에서 소외됨.
- 태어나는 아이들이 자신과 같은 상처를 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유전자를 조작했고, 그 결과 지성과 매력을 지닌 아이들을 만들어냈다.
- 그러나 돌연변이로 자신과 같은 흉터를 지닌 아이가 태어나자, 그를 ‘폐기’할지 고민하게 된다.
델피
- 올리브가 지구에서 만난 바텐더.
- 저가형 유전조작으로 실패한 신인류이다.
- 훗날 올리브의 연인이 되며, 함께 분리주의에 저항하고 행복하게 죽는다..
줄거리
- 데이지는 소피에게 편지를 쓴다.
성년식(순례)을 앞두고 마을을 떠난 일을 사과하며, 자신이 알게 된 진실을 고백한다. - 그녀는 말한다.
이 마을의 모든 아이들은 성년식(순례)을 끝내야만 비로소 어른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성년식 이후, 반드시 일부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 사실을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 데이지는 '문지기'를 통해 서가 너머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과거의 이야기, 즉 올리브의 삶을 홀로그램처럼 경험하게 된다. - 올리브는 릴리를 찾고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릴리와 같은 흉터를 지녔다.
그는 릴리를 자신의 시초이자 사랑의 대상이라 느낀다. - 델피를 통해 릴리의 과거를 알게 된다.
릴리는 유전공학자였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외톨이였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상처를 가진 이들이 불행하지 않길 바라며 개량인류를 만들어냈다. - 그러나 모순이 있었다.
유전자 조작으로 이상적인 존재를 만들어냈지만,
결국 자신과 같은 ‘결함’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자, 그녀는 차마 폐기할 수 없었다
아이를 폐기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것과 같기 때문이다. - 그래서 그녀는 결함없는 신인류를 만드는 일을 그만둔다.
그 대신 결함이 있지만 모두가 차별없는 공동체, '마을'를 만든다. - 마을은 릴리의 유산으로 세워졌다.
서로의 결함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공동체.
하지만 그곳을 떠난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 그 이유는 '사랑'이다.
유전적으로 너무도 비슷한 사람들 속에서는
본능적으로 사랑이 싹틀 수 없다.
불합리와 차별이 존재하는 지구이기에,
오히려 더 간절하게 사랑을 느낄 수 있다. - 데이지는 그 사실이 알고 싶었다.
그래서 마을을 떠났고, 소피에게 진심을 전한다.
느낀점
이 이야기를 읽으며 섹스미션이라는 영화(유튜브에서 결말포함으로 봄)가 떠올랐다.
섹스미션은 남성이 멸종하고, 사랑이 사라진 대신 평화롭고 질서 있는 사회가 구축된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냉동 상태에서 깨어난 두 남성이 그 사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잊혀졌던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사실 이런 주제 자체는 다소 익숙하고 클리셰적이다.
"과연 완벽해 보이는 사회가 진정한 행복을 보장할 수 있는가?"
"사랑 없는 세상이 정말로 이상향일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구조는 흔하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나루토의 ‘무한 츠쿠요미’도 떠올랐다.
겉보기엔 모두가 행복한 세계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개개인의 선택과 감정이 제거된 가짜 현실일 뿐이다.
생각해보면 요즘 현대사회는 ‘사랑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오히려 사랑은 리스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감정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굳이 내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사랑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만큼, 우리는 각박한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소설을 읽으면 더욱 흥미롭다.
작가는 아마도 불완전한 사회일지라도 사랑을 통해 극복 가능한 인류애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결국 완벽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불완전함 속에서도 서로를 사랑하고 연대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답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것 같다.
스펙트럼
내용
우주에서 표류하다 돌아온 할머니 희진이 들려준 이야기.
희진은 우주비행사였고, 그곳에서 루이를 만났다. 루이는 우주인이었지만 수명이 매우 짧았다.
루이는 몇 번이고 죽었지만, 새로운 루이가 나타나 희진을 받아들였다.
루이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루이가 죽으면 그 그림을 본 새로운 루이가 희진을 받아들이는 일이 반복되었다.
희진은 그 그림이 자신에 대한 관찰 기록이거나 루이들 사이에 전승되는 의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지구로 돌아온 희진은 그 그림을 해석하기 위해 남은 인생을 바쳤다.
희진이 죽자 연구노트는 함께 화장되었다. 희진의 손녀는 할머니가 기억하던 루이의 한 문장을 간직하고 있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느낀점
지구인이 우주인을 바라본다는 설정은 익숙한 클리셰지만, 우주인이 지구인을 관찰한다는 역발상이 신선했다.
특히 우주인을 고도로 발달한 문명체가 아닌,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원시적 존재로 그린 점이 흥미로웠다.
그렇다면 그런 우주인들에게 희진은 무엇이었을까?
작품 전반에 걸쳐 이 질문이 맴돌았는데, 마지막 문장이 명쾌한 답을 제시했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수명도 짧으며, 문명 수준도 낮은 우주인이지만, 결국 그들도 인격체를 만나면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존재였던 것이다.
서로 다른 종족 간의 만남을 통해 보편적인 감정의 힘을 보여준 아름다운 단편이었다.
루이들이 그림으로 전승한 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생 가설
내용
전설적인 예술가 류드밀라 마르코프는 어린 시절부터 한 번도 본 적 없는 행성을 그려왔다.
그녀의 붓끝에서 태어난 그 세계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웠고, 보는 이들의 마음 깊은 곳을 울렸다.
어린 시절의 작품들은 추상화였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성년이 되면서 그녀의 그림은 점점 구체적이고 정밀해졌다.
행성의 대기 성분, 중력, 생명체들의 생태까지 과학적 데이터가 스며들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변함없이 그녀의 작품을 사랑했다.
마치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워하듯,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 행성에서 깊은 향수를 느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숨겨져 있던 작품들이 발견되었다.
그 그림들은 공개작과는 달랐다. 애틋함과 슬픔, 깊은 외로움이 화폭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오랫동안 아무도 이 작품들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그녀가 그린 행성이 실제로 존재했던 것이다.
이미 소멸한 그 별의 마지막 빛이 수억 광년을 여행해 지구에 도달했고, 그녀의 작품 속 모든 수치가 실제와 완벽히 일치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답은 뜻밖의 곳에서 찾아졌다.
생각을 읽는 기술이 개발되자,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났다.
갓난아기들의 뇌에서 본능적 반응만 있어야 할 곳에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윤리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곳에서 계속 살아가야해"
연구 결과, 어떤 존재들이 아기의 뇌 속에서 공생하며 인격을 만들어주다가 7세가 되면 조용히 사라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채 자란 아이들에게는 인격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다.
인간의 인격은 그들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류드밀라 마르코프는 아마도 7세 이후에도 그들이 떠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들의 고향 행성을 그릴 수 있었고, 그들의 기억과 그리움을 화폭에 담을 수 있었다.
그녀의 숨겨진 작품들이 속삭이고 있던 것은 이런 간절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날 혼자 두지 말아줘." "내가 자라더라도 계속 내 곁에 있어줘."
그리고 사람들이 그녀의 작품 앞에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세계를 그리워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모든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그들이 머물렀던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느낀점
우리의 인격이 천부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외부의 존재에 의해 "주입"된다는 관점이 흥미로웠다.
배진수 작가의 "알파"가 떠올랐다.
알파에서도 우리 인류의 의지와 상관없이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신선한 시각을 보여줬다.
다만, 접근 방식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알파는 냉소적이고 차가운 시선으로 인류의 진화 과정을 조명하며, 그 끝에 남겨진 허무함을 강조한다.
반면, 이 작품은 그 허무의 자리에 애틋함과 연민, 그리고 소통의 가능성을 남긴다.
두 작품 모두 인간의 자율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만, 그 답은 상반된다.
알파는 "우리는 결국 누군가의 도구일 뿐"이라고 말하며 인간의 존재 가치를 부정한다.
반면 류드밀라는 "비록 우리의 인격이 주입된 것이라 해도, 그 과정에서 피어난 사랑과 예술은 진짜"라고 답한다.
특히 류드밀라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우리 안에도 그들이 머물렀던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매우 따뜻하다.
인격의 기원이 외부에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만들어낸 감정과 유대는 가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두 작품은 같은 전제에서 출발하지만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한다.
알파가 인간 존재의 무의미함을 강조한다면, 류드밀라는 그 무의미함 속에서도 피어날 수 있는 의미를 찾는다.
어떤 관점을 택하느냐에 따라 절망도, 희망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대조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주 여행이 일상이 된 미래, 한 우주정거장에서 주인공과 안나라는 할머니가 만난다. 안나는 다른 행성으로 떠나려 하고, 주인공은 무언가를 숨긴 채 그녀와 대화를 나눈다.
안나는 자신의 과거를 들려준다. 그녀는 딥프리징, 즉 냉동수면 기술의 연구자였다. 이 기술은 의학적 가치도 있었지만, 진정한 잠재력은 우주여행에 있었다. 몇 광년에 걸친 긴 우주여행 동안 인간은 냉동수면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프로젝트였고, 안나 역시 가족들과 함께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연구를 마무리하기 위해 지구에 남기로 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웜홀을 활용한 워프 기술이 발견되었다. 이제 인류는 웜홀을 통해 순간이동할 수 있게 되었고, 냉동수면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투자와 관심이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안나는 끝까지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가족들이 기다리는 행성으로 돌아가기만을 고대하며.
하지만 프로젝트 발표 당일, 우주연방은 딥프리징 기반 우주여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설상가상으로 웜홀 워프로는 안나의 가족이 있는 행성에 갈 수 없었다. 그 근처에는 웜홀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안나는 가족과 영원히 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노인이 될 때까지 계속 기다려왔다.
이때 주인공이 진실을 털어놓는다. 주인공은 안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우주정거장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으니 떠나달라고 말한다.
안나는 거부한다. 사실 그녀는 몇십 년이 아니라 거의 200년을 냉동수면과 각성을 반복하며 기다려온 것이었다. 하지만 우주연방이 완전 철수를 결정했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안나는 주인공이 방심한 틈을 타서 자신의 낡은 우주선에 올라탄다. 그 우주선으로 가족들의 행성에 도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그녀는 이미 몇십 년 전에 세상을 떠난 가족들이 있는 곳을 향해 떠난다.
주인공은 안나를 향해 총을 겨누지만 차마 쏘지 못하고 빗나가게 쏜다. 그리고 망연자실한 채 그녀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느낀점
낡은 기술이 폐기되는 현실은 개발자라면 누구나 체감하는 일이다.
한때 웹을 지배했던 ActiveX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jQuery도 이제 '구세대' 취급을 받는다.
더 이상 PHP를 새로 배우려는 사람도 드물다.
하지만 안나의 이야기는 이런 익숙한 풍경과 닮았으면서도 전혀 다르다.
기술이 사라질 때 보통 우리가 잃는 것은 커리어다.
근데 안나는 그 과정에서 삶의 전부를 잃었다.
여기서 공리주의적 사고가 과연 최선인지 의문이 든다.
다수의 편익을 위해 한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해도 되는 걸까?
웜홀 기술의 등장으로 인류는 확실히 더 나은 미래를 얻었다.
하지만 그 그늘에서 안나 같은 사람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안나의 무모한 비행은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가족을 향한 집념, 포기할 줄 모르는 인간 의지의 마지막 불꽃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라도 끝내 빛나길 바라기 때문이다.
댓글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